최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를 보면서 1차 세계대전 배경의 영화이다보니 역사적 사실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고, 알고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세계대전의 시작은 항상 작은 나라에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우크라이나 러시아 침고에 대한 부분이 3차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1차 세계대전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차 세계대전 알아보기
제1차 세계대전(영어: World War I, WW1)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되었고,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세계 대전(World War) 또는 대전쟁(Great War)이라고 불렸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병사 9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기술 및 산업의 고도화와 전술적 교착 상태로 인해 사상자 비율이 악화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망자가 많았던 전쟁 중 하나이며, 참전국의 수많은 혁명 등을 포함하여 주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전쟁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제국주의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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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보불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하여 독일이 통일한 이후, 산업 및 경제력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1890년대 중반부터 빌헬름 2세는 중요한 경제 자원을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가 지휘하는 독일 제국해군에 투자하여 영국 해군과 해군 군비 경쟁을 하게 되었다.
영국과 독일 사이의 군비 경쟁은 모든 유럽 주요국이 유럽 전역의 분쟁에 필요한 장비와 무기를 생산하는 데 산업 기반을 기울이면서 유럽 전역으로 경쟁이 확장되었다.
1908년부터 1913년까지 유럽 국가의 군비 지출은 50%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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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국민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사라예보 사건 :
세르비아의 흑수단이 지원하는 청년 보스니아 민족주의 단체의 암살단 6명이 대공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거리에 서 있었다.
암살단은 차에 수류탄을 던졌지만 차를 놓쳤다. 근처의 군중 몇몇이 부상을 입었고,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차는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
다른 암살단은 차가 빠르게 지나쳐 암살할 수 없었다. 약 한시간 후,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 병원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길을 잘못 들려 우연히 암살단이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암살단은 권총을 발사해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아내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를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게 최후 통첩을 내리면서 7월 위기가 시작되었고, 지난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국제적 동맹끼리 서로 연결되었다.
수주 이내에 강대국끼리 전쟁이 시작했고 이 분쟁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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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퍼져나간 1차 세계대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vs 세르비아 > 세르비아 동맹국 러시아 동원령 > 독일 제국 동원령 > 독일 vs 러시아 선전포고 > 독일 제국 룩셈브루크 침공 > 독일 제국 vs 프랑스 선전포고 > 독일 제국 vs 벨기에 선전포고 > 영국 vs 독일제국 선전포고
러시아가 동원령을 내리면서 독일군은 중립국인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로 진격했고, 이로 인해 영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파리 앞에서 독일군이 진격을 멈춘 이후, 서부 전선은 1917년까지 참호전과 같은 소모전 양상으로 굳어지게 된다.
동부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로 진격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동프로이센 침공은 독일군의 반격으로 실패하게 된다.
1914년 11월에는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면서 전역이 코카서스, 메소포타미아, 시나이반도 등으로 확대되게 된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1915년 참전했고, 루마니아 왕국은 1916년 참전했으며, 미국은 1917년 참전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도 전쟁이 일어났기에, 충국이 참전하였었고, 인도도 참전을 하게 되면서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던 일본도 참전을 하게 된다. 일본은 그 당시 중국의 산둥반도가 독일제국 식민지였기에 참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왜 이탈리아와 미국이 참전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탈리아 참전 이유 :
이탈리아는 삼국 동맹의 일환으로 1882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가 가지고 있던 트렌티노, 오스트리아 연해 지대, 피우메 (현 리예카), 달마티아 지역을 확보하고 싶었다.
이탈리아는 1902년 프랑스와 비밀 조약을 맺어 삼국 동맹을 무효화시켰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탈리아는 삼국 동맹은 방어적 조약이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공격자라는 이유로 참전을 거부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프랑스령 튀니지를 대가로 이탈리아의 중립을 이루기로 했다. 이에 대해, 연합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패배할 경우 남부 티롤, 오스트리아 연해 지대, 달마티아 연안 지대를 주는 조건으로 참전하게 했다.
미국 참전 이유 :
미국은 전쟁 중 영국과 독일 간에서 중립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계속적으로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공격에 대해서 방관하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표명했고, 독일은 이에 대해 이러한 공격을 중단할 것임을 몇 차례 약정했다.
1915년 5월 독일이 유보트를 이용해 영국 배(루시타니호)를 공격했는데, 그 배에 탔던 많은 미국인들이 죽었다. 윌슨 대통령은 의회에 독일에 선전 포고할 것을 1917년 4월 6일에 제의하였고, 12월 6일에 선전포고를하고 참전한다.
1차 세계대전의 결과
동맹국이 연합국에게 전쟁에 지면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 오스만 제국은 세브르 조약, 오스트리아는 생제르맹 조약,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 불가리아는 뇌이 조약을 맺으면서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고, 많은 영토와 인구를 잃었다. 이로 인해 발칸 반도와 중동 지방에서 많은 독립국들이 생겨났다.
독일의 경우 해외 식민지(중국, 아프리카, 태평양 식민지)를 모두 포기하였고, 본토 손실은 알자스와 로렌을 프랑스에 넘겨주고 폴란드 지역을 독립시킬 정도의 적잖은 영토를 잃었다.
또한 장기간 전쟁수행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실직자가 속출하였다. 더욱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과다한 배상금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승전국이었으나 연합국에게 영토를 보장받기는커녕 냉대를 받았다.
결국 1922년에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한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된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연합국임에도 불구하고 산둥 반도에 대한 이권을 돌려받지 못하였다.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중앙유럽의 많은 국가는 독립하였으며, 독립을 조건으로 영국을 도왔던 인도는 그 약속이 무산되자 지속적인 투쟁 운동을 시작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