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 관련 글을 하나 읽었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아서 정리를 좀 해본다.
보통 AI 얘기 나오면 “어떤 직업이 사라지나” 이 얘기만 하잖아.
근데 그게 핵심이 아니더라.
직업이 통째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가 쪼개지고 다시 조립된다는 거다.
이게 읽으면 읽을수록 맞는 말이야.
“그거 GPT한테 시키면 되는데요?”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 세대가 20~30년 쌓아온 게 뭔가. 경험이고 노하우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그건 저번에 해봤는데 안 돼” 이런 거 아니냐.
근데 AI가 그럴듯한 초안을 뚝딱 만들어내고, 보고서 요약하고, 기본 분석까지 해버리니까 후배들이 그런 소리를 하더라.
듣는 순간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우리가 회사에서 버텨온 힘 중에 상당 부분이 “이 일은 나밖에 못 해”라는 포지셔닝이었단 말이야.
근데 AI가 그 “나밖에 못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평준화시켜 버리니까, 갑자기 발밑이 흔들리는 느낌인 거지.
회사들이 슬슬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
예전엔 “경력 몇 년” 이게 힘이었는데, 이제는 “AI 써서 뭘 해봤냐” 이걸 물어본다.
면접도 바뀌고 있고.
우리 세대가 새 툴 배우는 속도가 2~30대보다 느린 건, 뭐 굳이 안 봐도 알지 않나.
20년 넘게 삽질한 것들이 쓸모가 생기는 구석
근데 가만 보면 좀 다른 면이 있다.
AI가 초안이나 기본 작업을 다 해줄수록, 진짜 값어치가 올라가는 건 “판단력”이랑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더라.
그걸 읽는데 문득 생각이 나는 거다.
20년 넘게 일하면서 온갖 프로젝트 말아먹어도 보고, 성공도 해보고, 거래처랑 싸워도 보고, 법무팀한테 걸려서 야근도 해보고.
이게 전부 맥락이고 현장 감각이야.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 회사 김 전무님은 이런 제안서 싫어해” “이 업종은 규제가 이렇게 바뀔 거다” “이거 지금 밀면 감사에 걸린다” 이런 건 모른다.
가만 들여다보면 구도가 좀 보인다.
- AI가 떨어뜨리는 가치: 초안 작성, 리서치 요약, 단순 보고서, 기본 코드, 템플릿 작업. 이건 이제 거의 공짜에 수렴하고 있다.
- AI가 올려주는 가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능력, 도메인 지식, 이해관계자 조율, 리스크 판단, 승인과 책임. 이건 전부 경험에서 나오는 거다.
후자 쪽을 보면, 우리 세대가 오래 해온 일들이랑 꽤 겹친다.
“써도 되는지” 판단하는 자리, 규제 아는 사람, 혼자 하는 사업
돈이 되는 구조도 슬슬 바뀌는 것 같다.
AI가 뭔가를 왕창 만들어내면, 그걸 “써도 되는지” 판단하는 사람이 필요해진다.
법무, 보안, 개인정보, 브랜드 가이드라인. 회사마다 이거 정리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한다.
회사 굴러가는 구조를 아는 사람이 여기서 좀 다른 위치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내 데이터, 고객 인사이트, 업종별 규제 지식, 인맥과 거래 관계 같은 건 인터넷에 안 떠다닌다.
이걸 AI와 결합하면 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예를 들어 특정 업종 영업을 20년 했으면, 그 업종의 의사결정 구조와 관행을 AI한테 먹여서 제안서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는 거다.
이건 아무리 센스 좋은 신입이라도 못 하는 영역이긴 하다.
또 하나 눈이 가는 건, 예전에는 사업하려면 사무실 얻고 직원 뽑고 이래야 했는데, 이제는 AI 에이전트 몇 개 붙이면 혼자서도 뭔가를 돌릴 수 있는 구조가 된다는 거다.
도메인 전문성을 작은 제품으로 패키징하면, 은퇴 후에도 수입이 될 수 있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생각해볼 만한 방향이긴 하다.
판이 바뀌었을 때 늘 그래왔던 것
요즘 가끔 생각한다. “AI 그거 유행이야” 하고 넘기는 것도, “이제 우리는 끝이야” 하고 접는 것도, 둘 다 아닌 것 같다고.
내 업무를 한번 쫙 펼쳐놓고 “이건 AI가 해도 되겠다 / 이건 내가 해야 한다” 나눠본 적이 있다.
그렇게 보니까 반복 작업을 넘기고 나면 남는 시간이 생기더라.
그 시간에 검증하고, 판단하고, 사람 만나는 일을 좀 더 하게 된다.
내가 가진 경험이랑 데이터를 정리하다 보면, 그게 어느 순간 뭔가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젊은 친구들보다 프롬프트 잘 쓰고 새 툴 빨리 익히냐.
아마 아닐 거다.
근데 우리한테는 20~30년치 삽질의 결과물이 있다.
그게 이 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좀 더 지켜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판이 바뀔 때마다 한 발 늦게 앉은 적도 있고, 먼저 자리 잡은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쪽이 될지, 그건 좀 본인 하기 나름인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