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를 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주식 계좌 열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코스피가 5500을 뚫었다고 뉴스에서 난리인데, 내 계좌는 왜 이 모양인가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미국이 답이다” 소리에 S&P500 ETF, 그러니까 오천피를 꾸준히 모아왔다.
그때는 다들 그랬다. 국장은 답이 없고, 미장이 진리라고.
그런데 올해 1월, 코스피 따라가는 ETF가 한 달에 25~29% 올랐다.
같은 기간 내가 들고 있는 TIGER S&P500은 0.08%.
퍼센트 앞에 0이 붙어 있다. 영점 영팔.
이걸 보면서 드는 감정이, 딱 하나 있다.
“아, 나는 왜 항상 반대편에 서 있나.”
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돈을 잃은 것보다 더 지독하게 괴롭다.
후배 한마디에 속이 쓰리다
더 속 쓰린 건, 주변 분위기다.
아는 후배가 슬쩍 “요즘 국장 안 해요?” 이런다.
“나는 장기투자 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대답은 하는데, 속으로는 좀 쓰리다.
코스피가 올해 들어 26% 뛰는 동안, 미국 S&P500은 고작 1.7%.
순자산 1위였던 TIGER S&P500이 KODEX 200한테 자리를 뺏겼다.
돈이 눈에 보이게 국내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뜻이다.
코스피 26% 급등, 진짜 실력인가 반짝인가
근데 여기서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코스피가 26% 올랐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그 전에 그만큼 박살이 나 있었다는 거다.
구덩이가 깊으면 반등도 세 보이는 법이다.
2025년 한국 증시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걸 다들 벌써 잊은 건가.
외국인이 연일 수조 원어치 사들이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하지만, 이게 진짜 체질이 바뀐 건지 아니면 잠깐 반짝하는 건지는 아직 모른다.
반도체가 잘 나가서 올라간 거면, 반도체가 꺾이면 또 나락이라는 소리 아닌가.
미국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미국 쪽 소식도 영 불안하다.
캐피털이코노믹스라는 데서 S&P500이 올해 8000까지 갔다가 7000으로 쭉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15% 더 오르고 나서 12% 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AI 관련 기대가 이미 주가에 다 반영돼서 더 오를 힘이 부족하다는 논리다.
트럼프는 또 관세 가지고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그린란드 사겠다고 유럽한테 관세 올린다고 협박하고,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1월에 미국 주식, 채권, 달러가 동시에 빠지는 “셀 아메리카”가 실제로 벌어졌다.
이러니 월가에서도 “미국에만 올인하는 건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해외 자산운용사들이 유럽, 일본, 한국 쪽으로 돈을 옮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근데 솔직히, 이런 뉴스 볼 때마다 나한테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지금 오천피 팔고 국장으로 갈아타면, 이미 25% 오른 걸 꼭대기에서 사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오천피를 계속 들고 있자니, 미국이 8000 찍고 7000으로 빠진다는데 그걸 견딜 수 있나.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이다.
수익률보다 더 화나는 건 정보 격차다
내가 제일 불만인 건, 사실 수익률 자체가 아니다.
정보가 너무 늦게 온다는 거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 사기 시작한 건 벌써 전부터인데, 그 흐름을 내가 체감한 건 이미 코스피가 5000을 넘긴 다음이었다.
항상 이렇다. 큰손들이 다 먹고 나서야 뉴스가 뜬다.
그때 따라 들어가면 꼭 물린다.
달러 약세가 내 수익을 몰래 갉아먹고 있다
걱정은 또 다른 데 있다.
내 돈이 달러로 묶여 있는데, 달러가 약세라는 거다.
오천피 수익률이 0%라도 환율이 올랐으면 원화로 바꿀 때 이득이 있는데, 지금은 반대다.
달러가 빠지면 ETF가 오르더라도 환율 손해로 까먹는다.
이 환율이라는 게, 눈에 안 보이게 내 수익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래도 기회가 아예 없진 않다
그래도 숨은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첫 번째로, 미국 증시에서 소형주 쪽이 슬슬 움직인다.
이번 주 러셀2000이라고, 미국 소형주 2000개짜리 지수가 1% 넘게 올랐다.
빅테크가 주춤하면 그 돈이 소형주로 갈 수 있다는 신호다.
오천피만 고집할 게 아니라,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를 넘겼다.
은도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불안할 때 사람들이 금으로 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포트폴리오에 금을 좀 섞어두는 건, 이 판에서 살아남는 보험 같은 거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세 가지 선택지
여기서 내가 고민하는 선택지가 세 가지다.
하나, 오천피를 일부 줄이고 코스피 쪽에 발을 걸쳐본다.
다만, 25% 오른 데 지금 들어가는 거니까 조금씩, 분할로.
코스피 6300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있으니 아직 여력이 있을 수도 있다.
대신 반도체 쏠림이 너무 심하면 그건 또 리스크다.
둘, 오천피는 그대로 두고 달러 약세를 역이용한다.
달러가 싸졌다는 건, 지금 달러를 사서 넣어두면 나중에 달러가 다시 오를 때 이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경기가 아직 견조하다면 달러가 영원히 빠지진 않는다.
장기로 보는 사람한테는 오히려 지금이 추가 매수 타이밍일 수 있다.
셋, 미국도 한국도 아닌 제3의 자산으로 분산한다.
금 ETF, 유럽 주식, 일본 주식.
월가에서도 “분산투자가 새로운 종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곳에 몰빵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방법을 찾을 거다
아직 뭐가 정답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매번 이런 갈림길에서 틀려왔으니까, 이번에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IMF 때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코로나 때도 “이번엔 진짜 끝이다” 했었다.
그때마다 어떻게든 버텼고, 결국 길은 나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계좌가 답답하고 마음이 조급해도, 공부하고 찾아보고 조금씩 움직이면 된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포기 안 하고 방법을 찾는 사람한테는 결국 기회가 온다.
나는 그걸 믿는다.
아니, 그걸 믿어야 내일도 출근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오늘도 일단 한 발짝, 가보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