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한국행, 비닐봉지 20억 장 분량이 호르무즈를 뚫고 오는 중이다
AIS 추적기를 끄고 달린 유조선이 있었다. 위치 신호를 아예 꺼버리고 호르무즈 해협 한복판을 밀고 나간 거다.
몰타 선적 오데사호는 4월 13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원유 100만 배럴, 한국 하루 소비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을 싣고 있었다.
이 배는 미국이 이란 해역을 역봉쇄하기 시작한 바로 그날 해협을 빠져나왔고, 17일 UAE 푸자이라항 인근에서야 다시 추적기가 켜진 채 포착됐다.
싱가포르 국적 석유제품 운반선 내비게이트 맥앨리스터호는 오데사호보다 앞서 18일 오후 호르무즈 해협의 라라크섬 앞을 지났다. 이 배에는 나프타 약 6만 톤이 실려 있었다. 비닐봉지 20억 장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오데사호는 5월 8일 충남 대산항, 맥앨리스터호는 5월 9일 울산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 배들이 빠져나간 직후 이란이 호르무즈를 다시 닫아버렸다는 거다.
프랑스 화물선 에버글레이드호를 향해 혁명수비대 고속정이 총격을 가했고, 선원들은 무전으로 “제발 쏘지 마”를 세 번이나 외쳤다.
인도 유조선 산마르 헤럴드호도 사격을 받았다. 뚫고 나온 건 운이 좋았던 거고, 그 뒤에 시도한 배들은 총탄에 막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타임라인
-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 공습했다. 이란 핵시설과 군사기지가 타격당했고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하루 80척 다니던 해협 통과 선박이 이틀 만에 0척이 됐다.
- 3월 초, 유조선 피격이 시작됐다. 선원 사망 소식이 잇따랐고, 국제유가가 70달러대에서 126달러까지 치솟았다.
- 3월 중순, 한국 유조선 7척이 해협에 묶였다. 나프타 수입이 끊기면서 종량제 봉투 사재기가 벌어졌고, 마트에서 비닐봉투가 품절되기 시작했다.
- 3월 말, 병원 주사기와 수액백까지 부족해졌다. 나프타는 단순한 비닐 원료가 아니었다. 플라스틱 기초물질 에틸렌의 핵심 원료여서, 의료소모품 생산까지 흔들렸다.
- 4월 8일,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했다.
- 4월 13일, 미국이 이란 해역을 역봉쇄하면서 오데사호와 맥앨리스터호가 해협을 통과했다.
- 4월 17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일시 개방을 선언했다.
- 4월 18일, 이란이 하루 만에 다시 봉쇄했다. 미국이 역봉쇄를 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4월 20일, 트럼프가 휴전을 하루 연장하면서 22일 저녁까지 합의가 없으면 전투 재개를 예고했다.
추적기를 끈 유조선, 보험료는 누가 냈을까
이게 좀 재미있는 부분이다. 오데사호가 AIS를 끄고 운항했다는 건, 이란과 미국 양쪽 감시를 피하려 했다는 뜻이다.

업계에 따르면, 원유 트레이딩사가 호르무즈 항행에 필요한 전쟁위험 보험료를 제시했고, HD현대오일뱅크 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계약이 성사됐다.
전쟁 전 선박 보험료가 선박 가치의 0.25% 수준이었는데, 봉쇄 이후 10배까지 뛰었다.
1억 달러짜리 배 한 척에 항해당 보험료만 37만 5천 달러, 한화로 약 5억 원 넘게 들어간 셈이다. 그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유를 가져와야 할 만큼 한국의 상황이 급했던 거다.
나프타 6만 톤이 도착하면 비닐 대란은 끝나는 건지
솔직히 말하면 끝나진 않는다.
나프타 6만 톤이 많아 보이지만, 한국의 연간 나프타 소비량은 900만에서 1,000만 톤 수준이다. 6만 톤은 약 이틀 반치 소비량에 불과하다.

비닐봉지 20억 장은 석유화학 산업 전체를 되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나프타 가격은 전쟁 전 배럴당 68달러에서 126달러로 거의 2배 올랐다.
온라인에서는 “쓰레기봉투 하나 버리는 게 금값”이라는 말이 돌았고,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플라스틱이든 비닐이든 싹 다 오르는 상황”이라는 비명이 나왔다.
마트 종량제봉투에 구매 제한이 걸리고, 대만에서도 비닐봉지 가격이 2배 뛰면서 사재기가 벌어졌다.
진짜 무서운 건 병원이었다.
주사기, 수액백, 수술용 장갑 생산이 흔들렸다.
의료계에서는 “나프타 쇼크가 느린 국가 재난”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4월 중순에야 넉 달치 의료소모품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게 현장 반응이었다.
기름값 2,000원 시대, 호르무즈가 다시 닫히면 어떻게 되는 건지
4월 21일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리터당 2,003원이다.
17일에 2,000원을 넘은 이후 계속 오르고 있다. 국제유가가 하루 만에 7% 가까이 급등했으니, 2~3주 뒤에 주유소 가격에 반영될 거다.
트럼프는 22일 저녁까지 합의가 없으면 전투를 재개하겠다고 했다. 이란도 미국이 역봉쇄를 풀기 전까지는 해협을 열지 않겠다고 맞섰다.

4월 초에도 열렸다가 하루 만에 닫힌 전례가 있다. SNS에서 “열렸다 닫혔다가 무한반복”이라고 정리한 글이 수천 개 공유됐는데, 그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24시간 동안 호르무즈를 지난 대형 상선은 단 한 척이었다. 영국은 호르무즈 일대 위협 수준을 최고 단계인 “위기”로 올렸다.
해협이 정상화되려면 최소 2~3개월은 안정적으로 열려야 한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이 배 두 척이 한국에 도착하면 당장의 숨통은 트인다.
하지만 이건 응급처치지 근본 해결이 아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한다. 나프타의 77%가 호르무즈를 지나온다. 이번 사태는 비닐봉지 하나, 주사기 하나가 전부 그 좁은 바닷길에 묶여 있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해협이 열렸다고요? 좋은 거네요. 근데 저번에도 열렸다 닫혔잖아요.” 이 말이 지금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는다. 트럼프가 “위대한 날”이라고 자축하든 말든, 우리가 봐야 할 건 실제로 배가 지나가고 있는지다.
5월 8일 대산항, 5월 9일 울산항. 이 배들이 무사히 도착하는지가 지금은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 배가 또 올 수 있는지가 그다음 문제다.
Q&A
Q1. 나프타가 비닐봉지랑 무슨 상관인지?
나프타는 원유에서 나오는 석유화학 원료다. 여기서 에틸렌이라는 물질이 나오고, 에틸렌으로 폴리에틸렌을 만들어서 비닐봉지, 플라스틱 용기, 수액백, 주사기 등을 생산한다. 나프타가 없으면 비닐부터 의료용품까지 전부 멈추는 구조다.
Q2. 오데사호가 추적기를 끈 이유는 뭔지?
이란 혁명수비대와 미군 양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AIS(자동식별장치)를 끄면 위치가 노출되지 않는다. 13일 해협을 통과한 뒤 17일 UAE 인근에서야 다시 신호가 켜진 채 포착됐다.
Q3. 나프타 6만 톤이면 한국에서 얼마나 쓸 수 있는 건지?
한국의 연간 나프타 소비량이 약 900만~1,000만 톤이다. 6만 톤은 약 이틀 반치 소비량에 해당한다. 비닐봉지 20억 장이라는 숫자는 인상적이지만, 산업 전체를 해결하긴 어렵다.
Q4. 호르무즈 해협이 또 닫힐 수 있는 건지?
가능성이 크다. 4월 17일 열렸다가 18일 하루 만에 다시 닫혔다. 트럼프는 22일까지 합의가 없으면 전투 재개를 예고했고, 이란도 미국의 역봉쇄가 풀리기 전까지는 개방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Q5. 기름값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국제유가가 하루 만에 7% 급등했고, 이게 2~3주 뒤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해협이 안정적으로 열리면 67달러대까지 내려올 전망이 있지만, 지금처럼 열렸다 닫히는 상황이 반복되면 기름값 상승세는 계속될 수 있다.
관련글
- 포장재 대란 총정리, 라면 봉지가 사라진다? – 나프타 수급이 비닐과 포장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 호르무즈 해협 사태 끝났다고? 트럼프 선언 그대로 믿어도 되는 건가 – 해협이 열렸다 닫히는 패턴과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비교해 읽으면 판단이 쉬워진다.
- 러시아 납사 제재 완화 호재인데 왜 불안할까 –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왜 완전한 해결이 안 되는지 정리돼 있다.
- 전쟁 전 기름인데 왜 올랐을까? 정부 가격 인상 주유소 점검 후에도 기름값이 안 내리는 이유 – 기름값 구조가 궁금하다면 이 글에서 주유소 가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 고유가 피해지원금 대상 및 지급 기준 논란 – 고유가로 피해를 입고 있다면 정부 지원금 대상인지 확인해볼 수 있다.
참고 자료
- 호르무즈 뚫은 유조선 8일 한국 온다…몰타 선적, 추적기 끄고 돌파 – 한겨레 – 오데사호의 잠행 항해 과정과 보험 계약 구조가 상세히 나와 있다.
- 호르무즈 해협 빠져나온 선박들, 대한민국 온다 – 한스경제 – 오데사호와 맥앨리스터호 2척의 입항 일정과 적재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미이란 전쟁 한달 호르무즈 봉쇄에 나프타 대란 전산업 도미노 충격 – 연합뉴스 – 나프타 수급 차질이 석유화학 전 산업으로 번진 과정을 정리한 기사다.
- 주사기 수액팩 부족해요, 우려했던 의료물품 수급 차질 현실로 – 매일경제 – 나프타 부족이 의료 현장까지 영향을 미친 실태를 다루고 있다.
- 이란, 미국과 평화 합의는 아직 요원… 호르무즈 다시 폐쇄 – BBC코리아 – 해협이 열렸다 닫히는 과정을 국제 시각에서 정리한 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