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기름값 24.2% 급등, 소비자물가 3.1%의 진짜 의미
오늘(6월 2일) 아침, 주유소 앞을 지나다 가격표를 봤다면 심장이 좀 아팠을 거다. 휘발유 23.1%, 경유 33.1%, 등유 21.7%. 전년 같은 달 대비 상승률이다. 5월 소비자물가가 3.1% 올라 26개월 만에 3%대를 찍었는데, 그 물가를 밀어올린 주범이 석유류 24.2% 급등이다.
근데 이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단순히 “기름값이 올랐다”로 끝나지 않는다.
3월부터 6월까지, 기름값이 오른 경로
시작점은 2월 28일이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 좁은 길을 지나는데, 이란이 선박 통행을 차단하면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3월 한 달 동안 브렌트유는 63%나 폭등했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한다. 길이 막히면 값이 뛴다. 여기까진 누구나 이해한다.
그런데 수상한 게 하나 있었다. 국제유가 변동이 국내 주유소에 반영되려면 보통 2~3주가 걸린다. 원유 도입하고, 정제하고, 유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전쟁 발발 닷새 만에 일부 주유소 경유가 850원 넘게 올랐다. 전쟁 전에 들여온 기름을 팔면서, 전쟁 후 시세를 미리 반영한 거다. (아름다운 중년)
정부가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꺼냈다. 3월 13일 1차 시행, 3월 27일 2차 시행. 정유사 공급가 상한선을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묶었다.
유류세 인하도 확대해서 휘발유 15%, 경유 25%로 깎았다. 5월 말 종료 예정이던 이 인하 조치는 7월 말까지 연장됐다.
그래도 5월 물가가 3.1%를 찍었다. 재정경제부 말에 따르면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가 없었으면 물가 상승률이 3.7%였을 거라고 한다. 0.6%포인트를 깎은 셈인데, 여전히 3%대다.
기름값 뒤에 있는 돈의 흐름
여기서부터 좀 더 뜯어봤다.
정유사 4곳(SK에너지, GS칼텍스, S-Oil, HD현대오일뱅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합산 5조 원 초반대로 추정된다. 작년 1분기 합산 811억 원에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쟁 전에 싸게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서 비싼 값에 팔았으니 마진이 커진 거다.
최고가격제로 내수에서 손실이 나는 건 맞다. 그런데 정유사 매출의 60~70%는 수출이다. 최고가격제가 적용 안 되는 수출 물량에서 수익이 나온다. 4월 석유제품 수출은 물량이 전년 대비 36% 줄었는데, 수출액은 오히려 40% 늘어서 51억 달러를 찍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로 생긴 정유사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하겠다고 했다. 3월 한 달 손실만 1조 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왔는데, 같은 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올린 정유사에게 세금을 보전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붙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하철 타는 서민이 벤츠 차주를 보조하는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돈의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다.
국제유가 상승 → 정유사는 수출에서 역대급 이익 → 내수에서는 최고가격제로 손실 → 그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움 → 기름 안 쓰는 사람도 세금으로 부담.
이 구조가 지금 돌아가고 있다.
기름값이 올리는 건 기름값만이 아니다
경유 33.1%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문제가 아니다.
경유는 화물차, 택배 트럭, 건설장비, 농기계가 쓴다. EBN 보도에 따르면 디젤 40% 상승 시 운송업체 전체 비용이 약 10% 늘어난다고 한다. 5월 국제항공료가 33.5% 올라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상승을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류비가 오르면 택배비가 오르고, 택배비가 오르면 내가 시킨 물건값이 오른다.
달걀 10.2%, 수입 쇠고기 7.6%, 갈치 15.1%. 이것들이 전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기름값이라는 하나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 관련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과 인플레 리스크 (아름다운 중년)
두 갈래 길, 어떤 선택이 나한테 맞나
여기서 보통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두 가지로 나뉜다.
경로 A: 버티기
유류세 인하가 7월 말까지 연장됐다. 고유가 피해지원금(아름다운 중년)으로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1인당 10만~60만 원이 지급되고 있다. K-패스 할인도 한시적으로 확대됐다. 이 혜택들을 놓치지 않고 챙기는 게 경로 A다.
이런 상황이면 경로 A: 자가용 의존도가 높고, 당장 차를 바꾸거나 생활 패턴을 확 바꾸기 어렵다면. 지원금 신청하고, 오피넷(opinet.co.kr)으로 주유소 가격 비교하고, 유류세 인하 혜택이 적용된 가격인지 확인하는 게 현실적이다.
경로 B: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기
대중교통 비중을 늘리거나, 하이브리드·전기차로 전환을 검토하거나, 재택근무가 가능하면 출근 횟수를 조정하는 식이다. 당장은 귀찮지만, 기름값이 다시 내려가도 이 구조적 변화는 계속 유효하다.
이런 상황이면 경로 B: 차량 교체 시기가 가까웠거나, 출퇴근 거리가 길어서 월 유류비가 30만 원 이상 나가는 경우. 이런 상황이면 지금의 고유가가 오히려 전환 시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환율이 1,530원대(아름다운 중년)인 점까지 고려하면, 수입차보다는 국산 전기차나 하이브리드를 검토하는 게 자연스럽다.
→ 관련글: 이란 휴전 깨지면 어떻게 되나, 기름값 2000원 시대 (아름다운 중년)
직접 확인하는 법
이 글에서 언급한 숫자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① 국가통계포털(kosis.kr) 접속 → ‘소비자물가지수’ 검색 → 품목별 등락률에서 석유류, 휘발유, 경유 항목을 시계열로 비교. 3월 9.9% → 4월 21.9% → 5월 24.2%로 올라가는 흐름이 눈에 보인다.
② 한국석유공사 오피넷(opinet.co.kr) → 유가 추이 탭에서 전국 평균 휘발유·경유 가격 변동을 주간 단위로 확인. 내 동네 주유소 가격도 바로 비교된다.
③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bok.or.kr) → 국제원자재가격 → 원유(브렌트유) 월별 추이 검색. 전쟁 전후 유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직접 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챙길 수 있는 것 정리
| 항목 | 내용 | 확인처 |
|---|---|---|
| 고유가 피해지원금 | 소득 하위 70%, 1인당 10만~60만 원 | 행정안전부 |
| 유류세 인하 | 휘발유 15%, 경유 25% 인하 (7월 말까지) | 연합뉴스 보도 |
| 주유소 가격 비교 | 같은 동네 리터당 100원 이상 차이 | 오피넷 |
| K-패스 할인 확대 | 대중교통 한시 50% 할인 | 고유가 추경 상세 (아름다운 중년) |
| 화물차 유가보조금 | 경유 1,700원 초과분의 70% 지원 | 국토교통부 발표 |
5월 물가 3.1%. 이 숫자가 전쟁 때문인 건 맞는데, 전쟁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유사 4곳 과점 구조, 빨리 올리고 느리게 내리는 관행, 세금으로 보전되는 손실 구조까지. 이 흐름을 알아야 다음에 또 기름값이 뛸 때 같은 당혹감을 반복하지 않는다.
브렌트유는 지금 배럴당 93~95달러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4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상선에 전면 개방한다고 선언하면서 유가가 일시 하락했지만, 전쟁 전 70달러대로 돌아간 건 아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에 따라 기름값 방향이 달라질 텐데, 그걸 예측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이 와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확보해두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야. 판단은 네 몫이고, 필요하면 전문가 상담을 권해.
→ 관련글: 국제유가 5% 하락, 트럼프 이란 종전 발언 왜 못 믿겠냐고? (아름다운 중년)
→ 관련글: 항공유 가격 전망, 유류할증료 역대 최고인데 왜 더 오를 수 있나 (아름다운 중년)
Q&A
Q1. 5월 소비자물가 3.1%는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2024년 3월(3.1%) 이후 26개월 만에 3%대를 찍은 거다. 한국은행 물가 안정 목표치가 2%인데, 1%포인트 이상 벗어났다. 다만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5%라서, 석유류를 빼면 물가 오름세가 극단적이진 않다. 전쟁 상황이 해소되면 3%대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있지만,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Q2. 최고가격제가 있는데 왜 기름값이 계속 오르나?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에 상한선을 거는 제도다. 2차 고시에서 1차보다 210원 인상됐고, 이후 3~5차까지 동결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계속 높은 수준이라 최고가격 자체가 이미 전쟁 전보다 크게 올라 있는 상태다. “더 오르는 걸 막는 것”이지, “전쟁 전 가격으로 되돌리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Q3. 정유사가 역대급 실적인데 세금으로 손실 보전하는 게 맞나?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정유사는 내수에서 최고가격제로 손실이 나지만, 수출에서는 큰 이익을 올리고 있다. KB증권 분석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적용 대상인 휘발유·경유·등유는 정유사 전체 판매량의 15% 정도다. 정부는 “원가 계산을 근거로 적절히 조정하겠다”는 입장이고, 정유사는 “재고평가이익은 장부상 이익일 뿐 현금이 들어오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보다, 이 구조 자체를 알아두는 게 중요하다.
Q4. 기름값 고공행진이 대출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나?
물가가 오르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서 잡으려는 유인이 생긴다. 5월 물가가 3.1%까지 올라왔으니 금리 인하 기대가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건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에 의한 물가 상승이라, 한국은행이 바로 금리를 올릴지는 불확실하다. 근원물가(2.5%)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확인해볼 곳은 한국은행 ECOS(ecos.bok.or.kr)에서 기준금리 시계열이다.
Q5. 전쟁이 끝나면 기름값은 바로 내려오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분석에 따르면, 조기 종전 시에도 에너지 시설 복구 지연으로 전쟁 전 대비 약 43% 높은 유가가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정상화되고, 걸프 국가들의 생산이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4월에 이란이 해협 개방을 선언했지만 유가는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쟁 끝나면 바로 내려온다”보다는 “서서히 내려오되 과거 수준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가 현실적인 예상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