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기름값 뉴스만 보면 당장 내릴 것 같은데
이란 외무장관이 “호르무즈 해협 완전 개방”이라고 트위터에 올린 게 4월 17일이다.
뉴욕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고,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11% 급락했다(KBS 뉴스).
S&P500은 처음으로 7100선을 넘었고, 나스닥은 1992년 이후 최장인 13거래일 연속 상승을 기록했다(한겨레). 숫자만 보면 전쟁이 끝난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차 기름값은 왜 그대로일까.
서울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오늘도 리터당 2000원을 넘고 있다. 국제유가가 11% 빠졌는데 주유소 가격은 오히려 9원 올랐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가 국내 가격에 반영되려면 통상 2주가 걸린다”고 말한다(한겨레).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문제는 2주 뒤에도 진짜 내려갈 수 있느냐는 거다.
입으로는 열었는데 바다는 안 열렸다

BBC가 선박 추적 데이터를 확인했더니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거의 없었다(BBC).
로이터 통신도 개방 선언 이후 해협 출구 방향으로 움직이는 선박이 약 20척 정도라고 보도했는데, 전쟁 전에는 하루 평균 138척이 지나다녔다(연합뉴스TV). 10분의 1도 안 된다.
왜 배들이 안 들어갈까.
답은 바닷속에 있다.
이란도 자기가 어디에 뿌렸는지 모른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이 핵심이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전쟁 초기에 소형 보트로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뿌렸는데, 그 기뢰의 정확한 위치를 이란 자신도 기록하지 못했다(한국일보).

일부 기뢰는 바닥에 고정된 게 아니라 물속을 떠다니는 부유 기뢰다. 이란이 공개한 안전 항로 해도가 있긴 한데, 기뢰가 무작위로 설치됐기 때문에 미국 당국자들은 이 해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란이 보유한 기뢰는 5000발에서 6000발로 추정된다. 접촉해야 터지는 재래식부터 자기장과 소리를 감지해서 폭발하는 스마트 기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서울신문).
기뢰 하나의 가격은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 정도로 저렴하지만, 이게 10만 톤짜리 유조선과 부딪히면 배 한 척이 통째로 날아간다.
보험회사가 배를 안 보내준다
선사 입장에서 진짜 문제는 보험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전쟁 위험 보험료가 최대 1000% 올랐다(연합뉴스).
전쟁 전에 선박 가치의 0.25% 수준이던 보험료가 지금은 3%까지 치솟았다(중앙일보).
30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한 척의 가치가 약 1억 달러라고 치면, 보험료만 300만 달러, 한화로 44억 원이다. 한 번 왕복하는 데 44억 원을 보험료로 내야 하는 바닷길을 선사가 쉽게 보낼 리 없다.
YTN 보도에 따르면 한 선사 관계자는 “일주일에 1억 5000만 원 정도 전쟁 보험료가 나가는데, 운임으로는 하루에 3000만에서 5000만 원 정도밖에 못 번다”고 했다(YTN).
배를 굴릴수록 적자라는 뜻이다.
1988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인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호위하는 “어니스트 윌 작전”을 수행했다.
그때도 이란이 기뢰를 뿌렸고, 미군 호위함 사무엘 로버츠호가 기뢰에 피격당했다(SBS 뉴스).
그 뒤 미국이 대규모 보복 공격인 “프레잉 맨티스 작전”을 벌였는데, 기뢰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1988년 당시 기뢰 기술보다 지금 이란의 기뢰가 훨씬 정교하다는 게 미국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뉴시스).
기뢰 제거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미 해군은 과거에 유인 소해함으로 기뢰를 제거했는데, 이 함정들은 대부분 퇴역했다. 지금은 연안전투함(LCS)에 탑재된 수중 드론 “나이프피시”와 무인 기뢰 제거 장비를 쓴다.
그런데 이 장비들이 기뢰를 찾아도 제거 명령을 내리는 건 인근 모함의 승무원이다. 기뢰 하나를 찾아서 무력화하는 데 최소 수 시간, 해협 전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는 수 주에서 수 개월이 걸린다(디펜스 뉴스 인용, 서울신문).
트럼프 대통령이 기뢰 제거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란의 공격에 노출된 상태에서 진행해야 하므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름값은 언제 내려가나
정리하면 이렇다.
국제유가가 빠진 건 맞다.
WTI가 배럴당 83달러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이게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려면 최소 2주가 걸리고, 중동에서 원유를 실은 배가 한국까지 오는 데 3주, 정제와 유통까지 합치면 3주에서 5주가 더 필요하다(쿠키뉴스).
게다가 2주 뒤 휴전이 끝나고 해협이 다시 닫히면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에너지경제연구원, 한겨레).
JP모건은 호르무즈가 완전히 개방되면 유가가 배럴당 67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뉴스1).
“완전히 개방되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지금은 입으로만 열린 상태다.
결국 핵심은 이거다.
증시는 기대감에 반응하고, 기름값은 물리적 현실에 반응한다.
이란 외무장관의 트위터 한 줄로 월가의 숫자는 바뀌었지만, 호르무즈 해협 바닥에 깔린 기뢰는 트위터를 읽지 못한다.
우리가 주유소에서 체감하는 가격이 진짜로 내려가려면, 기뢰가 제거되고, 보험료가 떨어지고, 선박이 정상적으로 다니고, 원유가 한국에 도착해서 정제되는 그 전체 과정이 돌아가야 한다.
지금 뉴스 헤드라인만 보고 “기름값 내리겠네”라고 생각하면 한 박자 빠른 거다. 반대로 “영원히 안 내려간다”고 패닉에 빠질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뉴스 속도가 아니라 원유가 실제로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서 판단하는 것이다.
Q&A
Q1.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됐다는데 왜 기름값이 안 내려가나요?
국제유가 변동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려면 통상 2주가 걸리고, 원유 운송과 정제까지 합치면 3주에서 5주가 필요하다. 게다가 실제 선박 통행이 정상화되지 않아 공급 자체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Q2.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가 얼마나 있나요?
이란이 보유한 기뢰는 5000발에서 6000발로 추정된다. 접촉식 재래기뢰부터 자기장과 음향을 감지하는 스마트 기뢰까지 종류가 다양하며, 이란 스스로도 정확한 설치 위치를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Q3. 기뢰 제거는 얼마나 걸리나요?
미군이 수중 드론과 무인 장비를 투입하고 있지만 해협 전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는 수 주에서 수 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1988년 어니스트 윌 작전 당시에도 완전 제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Q4. 2주 뒤 휴전이 끝나면 유가가 다시 오르나요?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휴전 종료 후 해협이 다시 봉쇄되면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대로 종전 협상이 타결되면 67달러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Q5. 지금 기름을 미리 넣어두는 게 이득인가요?
단기적으로는 국내 기름값 하락이 2주에서 5주 뒤에나 반영되므로 당장 급하게 가득 채울 필요는 없다. 다만 휴전 실패 시 급등 가능성도 있으므로 잔량이 적다면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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