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뉴스를 훑어보는 게 습관인데, 며칠 전 하나가 눈에 딱 걸려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자산 격차 요인 분석과 정책 과제’라는 보고서가 나왔는데, 제목부터 뼈를 때립니다.
먼저 뉴스 내용부터 간단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뉴스가 말하는 것
글을 읽기 어려우신 분들은 아래의 팟캐스트로 들어주세요.
보고서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한국 상위 10% 고자산가가 전체 자산의 65%를 차지하고 있고, 이 비율이 1995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덴마크나 일본보다 훨씬 심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둘째, 자산 격차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입니다. 부동산을 가진 것만으로도 중하위층과 격차가 벌어지고, 상위층은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사고 그 가치가 오르면서 자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입니다.
셋째, 연구진이 2007년 청년들을 16년간 추적했더니, 초기에 부모에게 증여받아 부동산을 산 사람과 생활비 대출로 출발한 사람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기만 했습니다. 한 번도 좁혀진 적이 없었습니다.
넷째, 성별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자산 보유 확률이 높았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일수록 자산 형성에 유리했습니다. 반면 임시직, 일용직, 장애인 가구는 자산 하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득과 자산의 상관관계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서, 노동 소득만으로는 자산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뉴스 내용이고요, 이제부터는 이걸 읽은 중 가장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부동산 한 채 차이가 평생을 갈라놨습니다
저는 사회 초년생 때부터 월급의 30%는 무조건 저축했습니다.
결혼하고 애 둘 키우면서도 그 원칙은 거의 지켰습니다. 아내도 맞벌이했고, 외식도 자주 안 했고, 해외여행은 손에 꼽습니다.
나름 꽤 잘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주변을 돌아보니까 씁쓸한 그림이 보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가 있는데, 그 친구는 결혼할 때 양가에서 아파트 자금을 보태줬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서울에 아파트를 샀고, 저는 그때 전세로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 친구 아파트 시세는 15억이 넘었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연차, 거의 같은 연봉을 30년간 받았는데 자산은 몇 배 차이입니다.
보고서가 말하는 ‘초기 자산 형성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게 바로 이겁니다.
20대 후반의 출발선 차이가, 50대의 자산 격차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겁니다.
‘더 벌면 된다’고 30년을 믿었는데, 소득과 자산은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승진하면 나아진다. 연봉이 오르면 격차가 줄어든다.’
실제로 연봉은 올랐습니다. 30년 전 첫 월급이 8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몇 배가 됐습니다.
그런데 보고서가 보여주는 숫자는 냉정합니다.
상위 10%의 자산 점유율이 30년째 65%에서 꿈쩍도 안 했다는 겁니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몇 배로 성장했고, 우리 모두 월급이 올랐는데, 자산의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였던 겁니다.
제가 열심히 번 돈은 생활비로 태워졌고,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부동산은 복리로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이걸 보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월급은 사다리가 아니었습니다. 러닝머신이었습니다.
30년을 뛰었는데 높이는 제자리인 겁니다. 그 옆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은 가만히 서서 올라갔고요.
아들한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해왔는데, 그 말이 거짓말이었을 수 있습니다
뉴스를 읽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허탈함이 아니라 죄책감이었습니다.
아들이 둘 있습니다. 큰애가 스물일곱이고, 작은애가 스물셋입니다.
큰애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내 월급으로는 서울에 집 못 사. 그냥 포기하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저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야, 아빠도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어. 꾸준히 모으면 된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보고 나니까 그 말이 목에 걸립니다.
2007년 청년들을 16년 추적한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잖아요.
부모 도움 없이 출발한 청년들은 16년이 지나도 자산 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제가 아들한테 한 말은 응원이 아니라, 이미 작동하지 않는 공식을 반복한 것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이들에게 수억 원을 증여할 형편이 안 됩니다.
퇴직금 받으면 노후 자금으로 써야 하고, 지금 집도 대출이 남아 있습니다.
보고서가 말하는 ‘사회 초기에 부모 찬스를 받은 집단이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다’는 결론이, 그래서 더 아프게 와닿습니다.
50대인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며칠 동안 멍하니 있다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현실적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정리해봤습니다.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지금 제 상황에서 당장 손댈 수 있는 것들입니다.
◆ 퇴직금은 안전하게 묻어두려 했는데, ‘안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퇴직금을 정기예금에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원금 보장되니까 안전하다고요.
그런데 뉴스를 다시 보니까 보고서가 말하는 구조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산 상위층은 부동산과 금융자산, 부채를 동시에 대규모로 굴리면서 복리로 자산을 불렸다는 겁니다.
반면 저처럼 ‘원금 보장’에만 매달리면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이자를 받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돈이 줄어드는 겁니다.
50대가 무리하게 투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퇴직 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모든 돈을 예금에만 묻어두는 건 **’안전한 척하는 손실’**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퇴직금의 일부만이라도 시장 수익률을 따라갈 수 있는 구조에 올려놓으려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 아이들에게 줄 목돈은 없는데, ‘돈’ 대신 ‘시간’을 증여하기로 했습니다
보고서가 말하는 핵심을 다시 뜯어보면, 부모 찬스의 본질은 ‘목돈’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준 것’입니다.
일찍 자산 궤도에 올라탈 시간을 선물한 겁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파트 살 돈을 줄 수는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큰애한테 며칠 전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집에서 같이 살면서 월세와 생활비를 아끼고, 그 돈을 매달 투자 계좌에 넣어라. 목돈이 아니라 시간을 주는 거다.”
2~3년 빨리 종잣돈을 만들 수 있으면, 그게 10년 뒤에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듭니다.
보고서가 16년 추적으로 보여준 그 복리 효과를, 아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작동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출발선이 다르니까, 이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위의 두 가지를 다 해도, 부모에게 수억을 받고 출발한 사람을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보고서가 16년치 데이터로 증명한 게 정확히 그겁니다.
그래서 이 뉴스를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보고서가 ‘사회적 상속’ 개념을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 찬스가 없는 청년에게도 사회가 최소한의 출발 자산을 만들어주자는 건데, 처음엔 이상적인 소리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 얼굴을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제 아들뿐만이 아닙니다.
이 나라에서 부모 도움 없이 사회에 나가는 청년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아이들한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출발선이 완전히 다른 경주를 시키고 있는 겁니다.
보고서 숫자가 보여주잖아요. 30년이 지나도 판이 안 바뀌었다고.
그러면 개인한테 ‘더 뛰어’라고 할 게 아니라, 트랙 자체를 다시 깔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길게 썼습니다. 중년 가장이 뉴스 하나 읽고 이렇게까지 글을 쓸 일은 잘 없는데,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안전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서 돈의 궤도를 다시 잡을 것. 아이들에게 목돈은 못 줘도 시간은 벌어줄 것. 그리고 이건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
저처럼 평생 성실하게 살았는데 어딘가 허전한 50대분들, 혹시 비슷한 생각 하고 계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같이 고민이라도 나누면 좀 덜 막막할 것 같습니다.


